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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수괴는 왜 문재인을 홀대하는가
  • 편집국
  • 등록 2021-03-01 21: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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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 집권 10년 차를 맞아 그간의 성과를 종합한 책을 펴냈다. 일종의 ‘김정은 위인전’이다. 핵무기 개발과 북미 정상회담을 주요 치적으로 선전했는데, 북한 특유의 스타일 대로 모든 공을 김 위원장에게 돌렸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8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위인과 강국시대’라는 제목의 도서 전문을 공개했다. 평양출판사가 지난해 12월 30일 발간한 이 책은 621쪽에 걸쳐 김정은 집권기의 국방,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분야 성과를 나열했다. 출판사 편집부는 서문에서 “김정은 원수님을 최고영도자로 높이 모시고 근 10년 세월이 흘렀다”며 “이 길지 않은 나날에 공화국은 아득한 높이에 올라섰다”고 총평했다.


가장 눈에 띈 건 핵무력을 과시한 대목이다. 책은 ‘핵에는 핵으로’라는 소제목을 붙인 글에서 2016년 수소탄 실험과 이듬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 ICBM ‘화성-14형ㆍ15형’ 발사 시험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적대 세력들과는 오직 힘으로, 폭제의 핵에는 정의의 핵 억제력만이 통할 수 있다. 경제건설을 위해서도 강력한 핵 무력으로 미국의 일방적인 핵 위협 역사를 끝장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장 신조라고 전했다.


대외 분야 성과로는 북미정상회담을 가장 먼저 꼽았다.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이듬해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소개에 15쪽을 할애했고, “세기의 최강자인 경애하는 원수님에 의해 국제 사회의 정치적 지각과 역학구도가 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 우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내용은 잘라냈다. 판문점 회동 역시 북미 정상 간 재회에 초점을 맞춰 북한이 초강대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음을 부각했다. 당시 만남을 적극 지원한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필자는 여기에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반도에서는 삼한의 태동이 꿈틀거리던 시절, 중국 대륙에서는 유비, 조조, 손권이라는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 수 천 년 지난 역사가 동양에서는 ‘삼국지’, 서양에서는 ‘Three Kingdoms’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영화, 게임, 만화로 변주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역사란 것이 교과서처럼 분석해 들어가면 ‘노잼’이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꿀잼’ 콘텐츠가 된다. 버전도 다양해서 펙트기반의 덤덤한 정사 삼국지가 있는가 하면, 야사 삼국지는 관우의 청룡언월도 한 방에 병사 30명의 목이 날아갔다는 둥 허풍이 가득하지만 흥미를 더한다. 비슷한 이유로 다 큰 어른들이 중-고교 교과서 내용은 다 까먹어도 이순신과 김유신이 등장하는 역사를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는 아직도 흥얼거리는 게 아닐까?


이러한 인물중심의 역사관은 자연스럽게 현대로도 넘어온다. 한중일미러 등 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가 얽힌 요즘의 국제뉴스는 ‘현대판 삼국지’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트럼프, 아베, 김정은, 푸틴 등 각국의 대표들을 각 나라의 주인공 삼아서 그들의 개성 넘치는 에피소드나 어록을 모으고, 그것들을 통해서 국가 간의 우호관계나 국력을 가늠하는 식이다.


예컨대 트럼프는 호두 으깨듯 강력하게 악수를 청해서 상대방의 기를 죽이는 걸로 유명하고, 아베는 강국에게는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하되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지도자에겐 악수만 스치듯 하고 깔보는 성품이더라, 푸틴은 약속시간에 최소 1시간은 늦는 거만한 성격이더라 식이다. 물론 다소 과장된 인물평이지만, 나름 각 나라의 국력과 외교 방식을 어느 정도 담아낸 것 같아서 참조할 만하다. 그렇다면 문재인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그 평가는 또한 대한민국의 세계 속 위상을 잘 드러내는 것일까?

어디 이뿐인가! 국내 언론들의 문재인 인물평은 상당히 야박한 듯하다. 포털 자동검색어에 먼저 뜨는 것은 ‘문재인 홀대론’이다. 아베가 악수 10초만 나눴을 뿐 별 대화도 나누지 않았더라, 푸틴이 문재인과 오찬 약속을 해놓고 2시간이나 늦더라, G20회담 주최측이 문재인만 수행원을 덜 붙여주는 바람에 갑자기 내린 비 속에서 각국 정상 중에 유일하게 직접 우산을 쓰더라, 라는 식이다. 그런데 펙트체크 해보면 대부분 홀대론은 사실과 달랐다. 푸틴의 지각은 G20 의전이 늦어지는 바람에 각국 지도자들 모두가 감수해야 했던 해프닝이었고, G20현장의 소나기는 워낙 갑작스런 것이어서 트럼프나 터키, 베트남 대통령 등 각국 정상 여럿이 직접 우산을 들고 다녔다.


결국 문재인을 홀대한 것은 다름아닌 역사의 기록자인 저널리스트들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펙트의 일부분만 캡쳐하고 확대해버렸다. 문재인을 홀대하고 싶은 마음이 기사에, 현장 사진에 투영된 것이다. 야사의 작가들은 누군가는 천하의 영웅으로, 누군가는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런데 현대 역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들도 야사를 쓰고 있다.


인물로 역사, 외교를 보려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펙트, 교차검증을 핵심으로 하는 저널리즘에서 야사가 발견된다면 곤란한 일이다. 이 때문에 기록 너머에 담긴 기록자의 욕망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현대인들에게 요구된다. 이렇듯 독자도 기록자도 치열한 심리전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현대판 삼국지도 제법 보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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