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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사악함과 비정함
  • 편집국
  • 등록 2021-03-01 21: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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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놈이 그놈인 세상, 유독 정치권만 왜 그런가?

조대형 대기자

국가란 평생을 일하지 않고 누리기만 하는 소수의 지배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존속한다. 

이상적 국가권력이란 일하는 약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의미를 찾아주는 천리를 집행하고 인류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당하고 불의한 사욕과 폭력으로부터 인류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사욕이 없고 청렴결백하며 인간의 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가권력은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사욕에 의해 장악되어 있어 감추어야 할 것들이 많다. 때문에 나라는 口+或(의심할혹)=國으로 온갖 의심스러운 일들을 밀실 속에 포장하여 감추는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의 정신건강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국민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의 역할은 정치권력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을 드러내 국민에게 알려줌으로서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심판하고 교체하여 불의에 대한 유혹을 단념하게 하는데 언론의 존재이유가 있다.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 정직하지 않으며 부정한 욕망과 불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을 일삼고 국민을 속이며 가진 자들의 탐욕을 대변하게 되면 국민의 삶은 비참해지며 국가는 망한다. 국민이 정치권력을 지배하여 정치권력이 건강하고 다수 하층의 낮은 사람들의 행복을 지향하면 국민이 선량해진다. 국민이 선량해지면 국가는 신성해지지만 대통령이 헌법과 법질서를 유린하고 사악하고 편협하여 한쪽으로 치우치고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면 국가는 신성함을 잃게 된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악한 바람이 기승을 부리면 촛불은 꺼질 수 있다. 분명 이 땅에는 어둠을 좋아하는 사악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지금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그간 숨어있던 반민주적 비 양심세력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세력은 만만히 볼 정도를 넘어 국민이 긴장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함을 요구하고 있다. 숨어있는 악이 드러난 악보다 무서운 것이고 보면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은 불행 중의 다행이라 하겠다. 국민의 방심은 그들에게 기회로 작용할 것이지만 절대다수 국민의 가슴속에서 활활 타고 꺼지지 않는 촛불은 민주와 정의를 보호하는 튼튼한 벽이 되어 사악한 바람을 무력하게 할 것이다.


한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바뀐 것 아니냐’고 속삭이며 ‘부자 되세요’를 인사말로 쓰기 시작했다.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을 경험한 국민은 비루한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다시 ‘진정성’을 입에 올렸다. 야권 인사들은 시대의 결이 문재인이나 안철수에게 있다고 착각 혹은 기대했지만, 국민은 배반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사익의 단순 사이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뉘앙스를 지닌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그리는 냉혹한 사익 추구 패턴은 문재인 시대와 한결 더 잘 어울린다. 


시민 공동체 시각에서 보자면 그것 역시 결국 그들만의 꿈이므로 사익의 다른 버전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제국 전체를 위한 헌신이자 공적 가치다. 결국 그는 권력의 정점을 거머쥐었지만, 사랑하던 소중한 이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했다. 사익과 공익이 묘하게 결합한 이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는 한국의 유권자가 ‘문재인’에게 투사했던 복잡한 무의식과 고스란히 닮아 있다.


과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에 대해 두 가지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순진한 시골 출신으로 워싱턴에 입성한 그는 “정계에서는 서로 죽이는 것을 스포츠처럼 생각한다”며 강한 혐오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진흙탕을 겪은 후에도 나는 정치의 이상주의적 희망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주의자가 지배하지만 이상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한 묘한 공간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2016년 대선에서 미국은 다시 ‘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 같은 극단적인 현실주의자를 택할까. 

문재인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2022년 대선에서 한국 유권자는 공익의 리더십, 사익의 리더십, 둘을 혼합한 리더십 가운데 어느 유형을 선택할까. 언제나 그렇듯, 허구의 세계가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현실정치의 긴장과 박진감이 훨씬 강력하기 마련이다. TV 밖 세상에 존재하는 진짜 드라마다.


조대형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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